본지는 828호부터 ‘나 때는 말이야’ 코너를 진행합니다. ‘나 때는 말이야?’에서는 과거 유행했던 X세대 문화부터 최근 떠오르는 MZ 세대 문화를 리뷰합니다. 기자 개인의 견해를 포함하고 있으니 다른 의견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리뷰해주세요!

현재 AI는 우리 삶 곳곳에 관여하고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챗지피티(Chat GPT)나 음식점의 서빙 로봇 등이 그 예이다. 인간의 삶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AI는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여겨왔던 영역에도 침범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대중문화 영역이다. 인간의 사유와 고뇌 끝에 만들어지는 것이 대중문화라고 여겨져 왔지만, 오늘날 AI는 이러한 통념을 깨고 있다. 그중에서도 음악 분야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활동했다는 흔적이 꽤 명확한 편이다.

AI로 만들어진 가수는 아이돌의 ‘*부캐’로 활동을 이어나가기도 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마스코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걸그룹 에스파(aespa)의 AI 캐릭터 ‘æ’, 정동원의 ‘JD1’ 등 KPOP 분야에서 사용됐으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제작사 라이엇 게임즈도 AI 걸그룹 ‘K/DA’를 탄생시켜 화제가 됐다. 그렇다면 AI 가수들의 조상은 누굴까? 시간을 거슬러 90년대로 돌아가 보자. 인간의 조상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면, AI 가수의 조상은 사이버 가수다.

1996년, 일본에서 최초의 사이버 가수 ‘다테쿄코’가 탄생했다. 한국에서는 ‘디키’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이후 2년 뒤인 1998년에는 한국의 사이버 가수 ‘아담’이 최초로 등장했다. 아담은 1집 타이틀곡 ‘세상엔 없는 사랑’으로 데뷔했다. 사랑하는 인간 여성을 위해 현실 세계로 왔다는 컨셉을 지니고 있다. 캐릭터의 외모는 배우 ‘원빈’을 따라 만든 것이라고. 이후 2호 사이버 가수 류시아, 3호 사이다 등이 연달아 나왔다. 당시에는 제법 신선하다고 받아들여졌던 모양이다. 아담의 1집 앨범이 20만 장이나 판매됐고, 타이틀곡인 ‘세상엔 없는 사랑’은 노래방에서도 많이 불릴 정도였다. 그러나 2집 발매 후 저조한 반응과 함께 소속사의 경제 위기로 인해 아담은 사망설까지 돌 정도로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또한 모순이 있다면 아담은 기계가 아닌 실제 가수 박성철이 캐릭터 내에서 노래한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보컬로이드(VOCALOID)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또 한 번 인간이 아닌 가수가 만들어졌다. 보컬로이드란, 일본의 기업 야마하에서 개발한 음성 합성 엔진과 이 엔진을 사용한 소프트웨어 및 이미지 캐릭터다. 2007년, 최초 보컬로이드인 ‘하츠네 미쿠’가 데뷔했다. 하츠네 미쿠는 성우 후지타 사키가 연기하는 팝적이고 귀여운 캐릭터의 목소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보컬로이드다. 이후 카이토, 카가미네 린, 렌 등 다양한 보컬로이드 캐릭터가 탄생했으며 함께 노래를 내기도 했다. 재밌는 점은 16,500엔을 내고 구독하면 직접 하츠네미쿠를 이용해 음악을 만들 수도 있다. 보컬로이드의 흥행 정도는 대단했다. 일본 내에서는 물론 한국, 미국 등 전세계적인 인기로 다양한 굿즈, 노래 커버, 일러스트들이 쏟아져나왔으며 그 인기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하츠네미쿠의 노래인지는 몰랐어도 ‘파 돌리기 송’, ‘심해소녀’, ‘소실’ 등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정도의 유명한 곡들도 많아서 인지도를 실감할 수 있다.

인간이 아닌 가수 중 최초의 사이버 가수 디키를 기준으로 한다면 약 28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들은 인간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며 대중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AI가 인간의 삶 대부분을 차지할 것이라 하지만, 대중문화의 영역까지 완전히 침범할 수 있을까? 실제로 대중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적은 보컬로이드나 AI 가수들이 낫다는 평가도 있고, 반대로 인간의 감정선은 절대 모방할 수 없을 것이라는 등의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앞으로 AI 가수들이 어떻게 인간을 흉내낼지 기대된다.

* 부캐 : 부캐릭터의 줄임말로, 자신이 사용하는 주요 캐릭터 외의 캐릭터를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