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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22세 청년의 죽음과 맞바꾼 법의 탄생]


“우리 창호가 눈을 감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안대를 씌워 보냈는데, 엄중한 판결이 나왔다면 부모로서 면목이 있었을 텐데…”

“창호는 한 줌 재가 됐는데, 가해자는 멀쩡하게 걸어 다니는 걸 보니 자식을 보낸 부모의 참담함을 느낍니다”

(음주운전자 박모씨 실형 선고 후 윤기호 씨 인터뷰 中)


군 복무 중이었던 고 윤창호 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음주운전자 박모 씨에게 2019년 2월 법원은 징역 6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이 끝나자 윤 씨의 아버지 윤기원 씨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습니다. 정의로운 검사를 꿈꾸던 아들을 떠나보낸 아버지는 그렇게 법정에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청년 윤창호의 안타까운 죽음. 이어진 음주운전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윤 씨의 친구들은 국민청원, 법안 발의 등의 사회 운동을 이끌며 음주운전 처벌 기준 개정을 촉구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 국민들도 공분했습니다. 윤 씨의 억울한 죽음에 관심을 호소한 국민 청원에는 약 40만 명이 동의하며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2018년 11월 29일 음주운전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습니다. 이어 다음 달 7일에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이른바 ‘윤창호법’이 탄생한 시점입니다.

 

‘윤창호법’은 2018년 12월 18일부터 시행된 ‘제1윤창호법’(특가법 개정안)과 이듬해 6월 25일부터 시행된 ‘제2윤창호법’(도로교통법 개정안) 크게 두가지로 나뉩니다.

 

‘제1윤창호법’은 특가법 제52조의 11(위험운전 치사상)을 개정해 형량을 강화한 법안입니다. 기존 특가법상 음주 운전으로 상해를 입힌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최대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사망의 경우 1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개정된 제1윤창호법은 상해의 경우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최대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사망의 경우 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이 가능하도록 법정 형량을 강화했습니다.

 

‘제2윤창호법’은 전반적인 음주운전 적발 기준을 손봤습니다. 도로교통법 제44조(술에 취한 상태에서의 운전금지)에서 운전자의 운전 금지 기준이 혈중알코올농도 0.05%에서 0.03%로, 면허취소 기준은 0.10% 이상에서 0.08% 이상으로 조정됐습니다. 혈중알코올농도 0.03%는 성인 남성이 소주 한 잔만 마셔도 적발되는 수치입니다. 아울러 ‘제2윤창호법’은 종전 음주운전 3회 적발 시 면허취소가 됐던 일명 ‘삼진아웃제’를 2회로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포함합니다.


[1. 윤창호법 시행 3년, 다시 꿈틀대는 음주운전]

엄벌을 촉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 친구들과 가족의 가늠할 수 없는 고통, 음주운전에 의해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 ‘도로 위 살인행위’인 음주운전은 지난 수십 년간 많은 희생자를 낳았습니다.

 

윤창호법 시행 후 3년, 모두가 그토록 바라던 변화는 일어났을까요?

 

윤창호법의 구체적인 효과를 점검하기 위해, 경찰청과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등록된 2016부터 2020년까지의 음주운전 관련 데이터 91,622개를 분석했습니다. 그 중 KDT는 전국 17개 시·도에서 발생한 음주운전 교통사고 건수, 사상자 수 현황, 재범자 단속 현황에 주목했습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전국 경찰서에 집계된 총 음주운전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2016년부터 윤창호법이 시행되기 이전인 2018년까지 발생한 사고는 연평균 약 19,500건입니다.

 

그럼에도 제1 윤창호법이 시행된 2018년 12월을 기점으로 음주운전 사고건수는 점차 줄어들었고, 제2 윤창호법이 시행된 2019년 사고건수는 전년 대비 약 17% 감소한 15,708건에 불과했습니다. 법 개정의 효과가 바로 드러나는 듯했지만, 이듬해인 2020년 사고건수는 약 10% 증가한 17,247건을 기록하며 반등했습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외부 음주 활동이 상당히 제한됐었음을 고려하면 ‘윤창호법 효과’는 일 년 만에 크게 줄었습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음주운전 사상자 수 또한 비슷한 양상입니다. 2019년 음주운전에 의한 부상자는 25,961명, 사망자는 295명으로 각각 전년보다 21%, 15%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2020년에는 부상자가 예년보다 2,102명 증가했고, 사망자는 고작 8명 줄어들었습니다. 이러한 추이는 음주운전 발생을 줄이고자 만든 ‘윤창호법’이 음주운전 사고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더 놀라운 점은 음주운전 재범자 단속 현황입니다. 2017년과 2018년 하향 곡선을 그리던 음주운전 재범자 수는 윤창호법 시행 1년 차인 2019년, 큰 폭으로 뛰어올랐습니다. 눈여겨볼 점은 음주 단속에 여러 번 적발된 사람의 수입니다. 2019년 음주단속 2회 재범자는 일 년 만에 약 2배 상승했고, 3회 재범자는 무려 약 6배나 증가했습니다.

 

[2. 음주운전 타도, 그 민낯에 관하여]

윤창호법 시행에도 음주운전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습니다. ‘무법 운전자’의 증가세는 최고 무기징역까지 행사할 수 있는 법을 비웃는 듯합니다. 이들은 왜 강화된 형량을 두려워하지 않을까요?

 

KDT는 2017년 6월 6일부터 2021년 11월 21일까지 발생한 음주운전 사망사고 대법원 판결문 424건을 전수 조사했습니다. 분석 전, 윤창호법 시행 전후를 각각 ‘DATA 1’과 ‘DATA 2’로, 강화된 윤창호법 양형기준 시행일 이후를 ‘DATA 3’으로 구분했습니다.

 

윤창호법이 시행되고 양형기준이 변경되기까지 걸린 시간, 560일. 우리는 윤창호법 시행 이전과 양형기준 수정 이후 560일을 각각 보고자 했습니다. 다만, 양형기준 수정 이후의 경우 데이터 조사일이 11월 12일인 관계로 DATA 3는 2020년 7월 1일부터 2021년 11월 12일까지의 499일, 그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판결문을 봤다는 점을 미리 밝힙니다.

 

최대 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이 가능한 윤창호법의 실질적 형량을 점검하기 위하여 음주 사망사고 판결문에 통상 적용되는 ‘위험운전치사’, ‘도주치사’, ‘음주운전’, ‘사망’을 키워드로 검색해 조건에 맞는 사건들을 분석했습니다. 또한 음주운전자 본인이 사망했거나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은 제외했습니다.

 

[2-1. 고작 5개월 늘었다고요?]

윤창호법 시행 전인 DATA 1은 실형 54.8%(63건), 집행유예 45.2%(52건)이 선고됐습니다. 반면 시행 후인 DATA 2에선 실형 78.5%(73건), 집행유예 21.5%(20건)로 다소 변화된 양상을 보였는데요. DATA 2의 실형 비율이 23.7%나 늘어난 점은 주목할만합니다.


형량에도 변화가 있었습니다. DATA 1의 실형 형량은 평균 27개월이었지만 DATA 2는 평균 41개월로 약 14개월이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집행유예에서는 징역형이 평균 18개월에서 28개월로, 집행유예 기간은 31개월에서 43개월로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증가한 실형 비율과 형량은 눈속임에 불과했습니다.시행 후 실형 형량인 평균 41개월은 최소 선고 기준인 3년과 단 5개월 차이입니다. 이는 윤창호법의 선고 영역이 최대 무기징역까지임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적은 수준입니다. DATA 1, 2에서 최고 형량은 96개월에 불과했습니다.

윤창호법이 시행되기 전인 2018년 11월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양형 기준에 대한 질의가 이뤄졌습니다. 채이배 의원은 “대법원의 양형기준이 굉장히 낮다고 생각한다”면서 “법원이 관대한 처분을 하면 범죄는 근절되지 않는다”고 양형기준의 개정을 촉구했습니다. 음주살인에 관한 법이 개정되더라도 양형 기준에 따라 판결이 비슷할 수 있다는 겁니다. 회의 이후, 윤창호법 역시 음주운전 살인에 대한 임시방편에 불과했냐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2-2. 그럼에도 여전히 가해자 편]

이 같은 요구에 법원이 응답했습니다. 2020년 4월 21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101차 회의를 열고 “음주운전 범죄 처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을 고려했다”며 새로운 ‘교통범죄 수정 양형기준’을 발표했습니다. ‘일반 교통사고’ 유형에 속했던 특가법상 위험운전치사상죄는 별도로 분리됐고 ‘위험운전 교통사고’ 유형이 신설돼 형량 범위가 상향됐습니다. 또한 윤창호법이 적용되는 위험운전치사는 기본영역이 징역 2년~5년, 가중영역이 징역 4년~8년으로 변경돼 기존보다 두 배 안팎으로 벌어졌습니다. 이어 양형위는 교통범죄에 특별가중인자(음주운전 전과 등)가 포함될 경우, 최대 징역 12년까지 양형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해당 내용은 2020년 7월 1일부터 적용됐습니다.

 

과연 높아진 양형기준이 판결에 영향을 미쳤을까요? 결과는 ‘아니오’에 가깝습니다.

 

양형기준 변경 이후인 DATA 3은 실형 70.5%(79건), 집행유예 29.5%(33건)으로 시행 전인 DATA 2보다 실형 비율이 8%나 낮아졌습니다. 나아가 DATA 3의 실형 형량은 전보다 4개월 상승한 평균 45개월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집행유예에서는 DATA 2와 형량이 같았습니다. 윤창호법 시행 이전인 DATA 1과 비교해도 실형은 평균 18개월밖에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윤창호법의 양형 기준이 4년에서 8년인 점을 고려할 때, 가해자들은 대체로 최소한의 처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2-3. 다시 운전대를 잡기 시작한 그들]

앞서 양형위원회는 교통범죄에 특별가중인자(음주운전 전과 등)가 포함될 경우, 최대 징역 12년까지 양형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기존 가중영역이 징역 1년에서 3년인 점을 고려하면 최대 형량은 9년이 늘어났습니다. 재범자의 경각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보다 엄중한 기준을 적용한 것인데요.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양형기준이 바뀌기 전인 DATA 2에서 음주살인 범죄자의 34.4%는 이미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은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DATA 3에선 이 비율이 45.2%까지 늘어납니다. 음주살인을 저지른 이들 중 절반 가까이가 음주전력이 있는 것입니다.


2회 이상 음주전력자 자체가 증가한 것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DATA 2에서 2회 이상 음주운전을 한 재범자는 11명인 반면, DATA 3에선 그 숫자가 3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보여주기식에 불과한 윤창호법에 이들은 다시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2-4. ‘무기징역’은 어디로 갔는가]

왜 지난 3년간 윤창호법으로 무기징역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까요? 발목을 잡은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법원의 양형기준입니다. 어떻게 양형기준이 형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법원에서는 죄마다 정해진 형(刑)의 범위를 법정형이라고 합니다. 이 법정형 내에서 일정한 기준에 따라 형을 가중하거나 감경하는 사유가 있을 경우 법관은 재량으로 선고형을 정할 수 있습니다. 이때 양형기준이 사용됩니다. 양형기준은 선고형을 내릴 때 법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형량 차이가 지나치게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대법원이 정해 둔 형량 범위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윤창호법에 해당하는 법정형은 ‘최대 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입니다. 법관은 형에 가중 혹은 감경 요소가 있는지 판단한 뒤, 위험운전치사에 해당하는 양형기준을 적용해 선고형을 내립니다. 그런데 법정형과 달리 양형기준은 무기징역을 포함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특별가중인자가 포함될 때 선고 가능한 징역 12년이 사실상윤창호법의 최대 형량인 것입니다.

 

이러한 양형기준은 법관이 형량을 정함에 있어 참고해야 하지만 원칙적으로 구속력이 없어 그야말로 ‘기준’에 불과합니다. 다만 법관은 선고과정에서 양형기준을 존중해야 하며 이를 벗어나는 판결을 할 경우 판결문에 양형이유를 기재해야 합니다. 법관이 마땅한 사유 없이 양형기준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DATA 2, 3의 판례를 검토한 결과, 윤창호법의 맹점은 더욱 분명했습니다. 관례상, 양형위는 이전에 선고한 형량의 평균을 바탕으로 양형기준을 세웁니다. 비교적 형량이 낮았던 윤창호법 시행 이전의 판례들까지 참작해야 하는 양형위는 양형 기준을 단번에 올릴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DATA 3에서 양형기준이 수정됐다고 하더라도, 그 차이가 미미해 판결문에서 무기징역을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3. 죽음에도 무게가 다르다 ]

45개월의 형량. 그러나 이조차 허락되지 않은 사건들이 있습니다. 모든 음주운전이 윤창호법으로 처벌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특가법(윤창호법)이 아닌,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이하 특례법)으로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가법과 특례법. 두 법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요?

 

법 조항에 명시된 특가법과 특례법의 차이는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특가법은 특례법보다 음주운전치사를 더 강력하게 처벌합니다. 실제로 어떤 법을 적용받느냐에 따라 사건의 처벌양상이 달라지는데요. 따라서 특가법과 특례법을 나누는 기준이 중요합니다.‘음주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서 차를 운전해 사람을 상해나 사망케 한 경우’ 특가법, ‘업무상과실 또는 중과실치사상 죄를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운전해 범한 경우’에는 특례법이 적용됩니다. 가해자가 음주했다는 건 측정 등을 통해 밝혀지겠지만,‘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양형기준 변경 후인 DATA 3의 판결문을 분석해 두 법의 차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3-1. 같은 범죄, 다른 처벌]

DATA 3에서 특가법의 실형 형량은 평균 45개월, 특례법은 22개월로 두 배 이상의 격차가 벌어졌습니다. 실형과 집행유예 선고 비율 역시 달랐습니다. 특가법의 경우 실형이 70.5%, 집행유예가 29.5%였지만 특례법은 실형 16.7%, 집행유예 83.3%로 차이가 큽니다. 사건이 특가법일 경우 대부분의 형이 집행됐지만, 특례법이면 범죄자 10명 중 약 8명의 처벌이 유보됐습니다. 음주운전으로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점은 같지만, 법관이 가해자에게 주는 징벌은 제각각입니다. 처벌에도 ‘암묵적 위계’가 존재했습니다.

 

[3-2. 도대체 ‘정상적인 상태’는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현행법은 음주운전 살인사건의 경중을 어떻게 나누고 있을까요. 유사한 조건의 두 사건을 비교해 법의 적용 기준을 살펴봤습니다.

 

사건 A와 사건 B는 불과 하루의 간격을 두고 발생했습니다. 두 사건에서 모두 한 명의 피해자가 나왔습니다. 음주의 지표인 혈중알코올농도 역시 0.116%로 동일합니다. 놀라울 만큼 닮아있는 두 사건에서 유일하게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적용 법률과 판결입니다. 사건 A는 특가법으로 징역 6년의 실형을, 사건 B는 특례법으로 징역 1년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법이 두 사건을 다르게 판단한 것입니다.


왜 법원은 두 사건을 각각 다르게 판단했을까요. 바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 대한 판단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특가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혈중알코올농도 외에도 음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라는 추가적인 증거가 필요합니다. 다음은 법원이 지침으로 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입니다.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를 입증하기 위해선 냄새, 어투, 걸음걸이 등이 술에 취한 것처럼 보여야 합니다. 다수의 판결문에는 ‘흐릿한  눈빛’, ‘붉은 얼굴’, ‘술 냄새’ 등의 말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매우 다르게 기록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 주관적이고 모호한 판단들은 법정에서 특가법과 특례법을 가르는 분기점으로 탈바꿈합니다.

 

이렇게 중요한 음주 상태에 대한 기록은 피고인을 최초로 맞닥뜨리는 경찰관의 손에서 시작됩니다. 현장에 없었던 검사도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인지를 면밀하게 검토해 기소해야 합니다. 오로지 경찰과 검사에게 입증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윤창호법’의 적용을 주저할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4. 실수라고요? 아니요 살인입니다.]

불안정한 운전의 위험성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그들. 그들의 위험천만한 주행은 예견된 비극이었다는 점에서 우발적인 실수가 아닌 살인입니다.


음주살인을 엄벌하기 위해 ‘윤창호법’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법정 최저형에 가까운 판결과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 대한 모호한 기준은 법의 본래 취지를 묘연하게 합니다.


오늘도 피해자들은 차가운 도로 위에서 죽어갑니다. 관련자들은 여전히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음주살인에 대한 엄중한 처벌은 가해자 대신 *영어(囹圄)돼 있습니다.


영어(囹圄)되다: 죄인이 가둬지다


[4-1. 목숨값이 45개월인 사람들]

판결문은 처참했던 사고상황을 가해자의 관점에서 조립합니다. 정상적인 운전 가능 여부부터 다양한 감경요소까지. 법조계의 관심은 온통 가해자에게 쏠려 있습니다. 그 결과 피해자들에게는 목숨값 45개월이 부여됐습니다. 판결문의 끝자락. 이 목숨값의 주인은 간혹 모습을 드러냅니다. 사건의 조연인 피해자들에게 45개월은 어떤 의미일까요. 판결문에 제시된 당시의 사고상황을 재구성했습니다.

 

2021년 1월 1일 광주시 광산구, 피해자는 신호대기를 위해 잠시 도로에 정차했습니다. 그때 맞은편에서 차 한 대가 중앙선을 침범해 133km의 속도로 달려왔습니다. 피해자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가해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56%. 차량은 이미 1차 교통사고를 일으킨 상태였습니다. 피해자는 창업을 준비하는 꿈 많던 20대였습니다. 그녀의 죽음을 바로 눈앞에서 목도한 친구는 심각한 정신적 충격 속에서 아직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지 18개월.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어린 자녀를 두고 피해자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습니다. 혈중알코올농도 0.149%의 음주 운전자가 120km의 속력으로 피해 차량을 들이받았기 때문입니다. 가해자는 사고의 고통 속에서 죽어가던 피해자를 위해 그 어떤 구호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2021년 4월 16일, 법원은 원심판결(징역 5년)을 파기하고 가해자의 손을 들었습니다. 원심의 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2020년 4월 30일 경북 예천군, 오토바이를 운전하던 피해자는 차가운 도로로 곤두박질쳤습니다. 생명이 오가는 긴박한 상황, 경찰은 피해자 구호를 위해 다급히 심폐소생술을 진행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경찰에게 다가와 ‘절도품을 찾아주지 않는다’며 횡설수설했습니다. 그는 사고를 낸 장본인이었습니다. 가해자는 이미 여러 번의 음주운전 전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막을 수도 있었던 죽음. 결국 아득하게 멀어지는 정신 속에서 가해자의 투정을 들어야 했던 피해자는 병동에서 마지막 숨을 거뒀습니다.


[4-2. 명징한 심판을 위해]

정확하지 않은 특가법과 특례법 판정 기준에 대해 관련자들은 구체적인 답변을 보류했습니다. 음주운전 살인사건이 저마다 내용이 달라 획일화할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경찰 관계자 A


하루에도 5~6건씩 음주 교통사고가 접수돼요. 모든 사건에 대해서 일일이 말씀드리기는 힘들어요. 말투나 보행의 비틀거림, 혈색 등을 통해 운전자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사건들에 대해서는 제가 정확하게 답변드릴 수 없고요. 음주측정에 불응하시고 물로 입을 헹구시는 분들도 있어서 저희도 곤란합니다.


법원 관계자 B


재판부의 윤창호법 적용기준은 개별 사안에 대한  판결이어서 구체적인 답변이 불가능합니다. 다만 음주 수치만으로 윤창호법, 위험운전 치사상이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법원에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더욱 엄격한 요건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음주가 사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가 핵심인데 이를 저희가 함부로 말씀드리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

 

검사는 윤창호법을 적용해서 처벌하고 싶어도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정도’를 법원에 상세히 입증해야 하는 구조에 부딪히게 됩니다. 형사재판에서 납득이 될 만큼 ‘정말 이 사람이 운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음주를 많이 했구나’를 설명해야 하는데 매우 지난한 과정이죠. 입증책임을 전환하지 않고서는 음주운전 근절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죠.


정경일 교통사고 전문변호사


‘정상적인 운전이 불가능하다’라는 말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입니다. 윤창호법을 피하기 위해 음주운전 범죄자들이 이 대목을 붙들고 있습니다. 3년 전인 2018년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한 청년이 목숨을 잃었고, 그 이름을 딴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법 시행 3년 이후 동안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그다지 줄지 않았고 실제 처벌은 무겁지 않습니다. 지금의 윤창호법만으로는 음주운전이 근절될 수 없습니다.


- 2021년 11월 15일. 윤창호법 보완 촉구 기자회견 中 -


[4-3. 내 가족의 죽음에도 적용될 법]

2018년 9월 25일. 국가의 부름을 받은 22살의 청년 윤창호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부모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84일 만인 2018년 12월 18일. 그는 음주운전을 근절하는 법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지금. 국민들의 간절한 염원이 모인지 3년이 흘렀습니다.

 

사라졌습니다. 음주운전으로 선량한 시민을 죽인 운전자를 가중처벌해 안일했던 음주운전 인식을 개선해 보겠다는 3년 전의 굳은 다짐이 말입니다.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정도를 판단하는 객관적인 기준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음주운전 상습범은 늘고 있지만, 이들에게 분명한 처벌을 내릴 재판관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최대 무기징역을 선고하겠다며 떵떵거리던 사법부는 피해자의 하나뿐인 목숨을 가해자의 45개월과 맞바꿨습니다.

 

2021년 11월 25일. 헌법재판소가 윤창호법 조항 중 하나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들은 ‘두 차례 이상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된 사람을 가중처벌하는 내용’이 헌법이 추구하는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10년 전에 발생한 음주운전은 반복적인 위협행위가 아니게 됐습니다. 가벼운 음주운전임에도 지나치게 엄벌하는 작금의 윤창호법이 틀렸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얼마나 음주운전을 해야 ‘반복적’인 행위입니까. ‘가벼운 음주운전’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가족을 잃고 친구를 떠나보낸 피해자들의 울부짖음에 검은 법복을 입은 이들은 언제쯤 귀를 기울일 것입니까.

 

변해야 합니다. 입증책임을 경찰과 검사에게 부여하는 윤창호법은 피해자를 위한 법이 아닙니다. 범죄자가 정상적인 운전을 할 수 있는지를 정형화하여 이를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이들의 분노를 잠재울 만큼 가해자의 시간을 충분히 빼앗아야 합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친구 인생이 박살 났습니다. 3년 전,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故 윤창호 친구들의 외침이 메아리처럼 들려옵니다. 피해자는 말이 없습니다. 경찰이, 검찰이, 법원이 제대로 응답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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